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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타령

South Korea

각설이타령은 구걸을 하던 각설이패가 부르던 한국의 민요이다. 조선 말기 무렵 전국 각지에서 불렸으며 지역마다 다양한 변형이 있다. 오일장과 같은 시장이 열리면 각설이패가 나타나 불렀기 때문에 장타령이라고도 한다. 현대에서는 1981년 김시라가 1인 연극 《품바》를 공연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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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 guide to 각설이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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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타령은 구걸을 하던 각설이패가 부르던 한국의 민요이다.

01 · What it is
Living Tradition

Documented cultural tradition on record; family classification awaits an editor.

02 · Where & name
South Korea

Placed on record in South Korea.

03 · How it is doing
□□□□ (Not yet assessed)

Documented in open cultural records, but no cited field assessment of its current vitality has been added here yet.

04 · Proof & reuse
2 cited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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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Takeaways
배경흔히 거지라고 불리던 구걸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고대부터 있었다.
구성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는 걸인의 처지 때문에 전국 곳곳에 각설이타령이 전파되었다.
영향현대에 들어 각설이타령을 새롭게 구성하고 널리 알린 인물은 1981년 1인극 《품바》를 공연한 김시라이다.
외부 링크한국민요대전(전라북도편 CD 02) - 03,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시장, 각설이타령, 우리소리박물관 북한민요전집2: 북녘 땅 우리소리(황해남북도편 CD 02) - 09, 황해북도 신계군 추천리, 각설이타령, 우리소리박물관
Common Questions Answered on Record
What is 각설이타령 in plain words?

각설이타령은 구걸을 하던 각설이패가 부르던 한국의 민요이다.

Where is 각설이타령 practised or documented?

Sources on this page place 각설이타령 in South Korea.

What is the current condition of 각설이타령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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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dition & historical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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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타령은 구걸을 하던 각설이패가 부르던 한국의 민요이다. 조선 말기 무렵 전국 각지에서 불렸으며 지역마다 다양한 변형이 있다. 오일장과 같은 시장이 열리면 각설이패가 나타나 불렀기 때문에 장타령이라고도 한다. 현대에서는 1981년 김시라가 1인 연극 《품바》를 공연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1

배경

흔히 거지라고 불리던 구걸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고대부터 있었다. 각설이패가 일반적인 거지와 구별되는 점은 이들이 4-5인 규모의 집단으로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며 구걸을 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에 이미 집단적으로 공연하며 구걸하는 천민집단이 묘사되어 있다. 남사당패와 같은 전문적인 연행집단과는 차이가 있으나 이들과도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유학자인 박지원의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은 서울에 사는 거지 왕초로 묘사되어 당시 서울에 집단을 이룬 거지들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구걸 집단 중에서 장터를 돌며 공연을 펼치던 사람들을 각설이패라고 하였다.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의 초기 집대성인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의 〈가루지기타령〉에 각설이패가 장타령을 부른다는 구절이 나오고 〈흥보가〉에도 등장한다. 김시라가 각설이타령을 채록하던 1970년대까지 대한민국에 여전히 따로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1

구성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는 걸인의 처지 때문에 전국 곳곳에 각설이타령이 전파되었다. 악곡은 대개 메나리토리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의성어와 반복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는 가사로 2소박 4박자의 동살풀이장단으로 부를 수 있다. 숫자와 낱말등을 이용한 언어유희가 주를 이루는 가사로 구성된 각설이타령은 이런 의미에서 유희요로 구분된다. 사설은 장풀이, 숫자풀이, 국문뒤풀이, 투전풀이, 화투뒤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종류의 풀이가 사설을 이루는 점은 본풀이와 같은 무속의 영향으로 평가된다. 이는 조선 후기 이후 일상화된 고사패나 사당패와 같은 연희 집단의 공연 모습을 따라한 것일 수 있다. 지역마다 사설과 장단에 변형이 있다. 예를 들어 부산 지역의 경우엔 처녀 총각 귀신 이야기나 각종 보부상 이야기 등이 사설로 등장한다. 1

영향

현대에 들어 각설이타령을 새롭게 구성하고 널리 알린 인물은 1981년 1인극 《품바》를 공연한 김시라이다. 《품바》가 1990년대 중반까지 6천회 이상의 공연을 펼치며 유명해지자 다양한 집단에서 각설이타령과 품바를 소재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남기남이 제작한 《작년에 왔던 각설이》와 같은 코미디 영화가 있다. 이후 전국의 장터마다 품바를 자처하는 아마추어 연희자들이 생겼다. 1

같이 보기

품바 1

외부 링크

한국민요대전(전라북도편 CD 02) - 03,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시장, 각설이타령, 우리소리박물관 북한민요전집2: 북녘 땅 우리소리(황해남북도편 CD 02) - 09, 황해북도 신계군 추천리, 각설이타령, 우리소리박물관 1

The text above is adapted from the Wikipedia article “각설이타령”, available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Alike 4.0 licenc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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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on Record
[1]Wikipedia: 각설이타령 ·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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